* 현대au?인가 우주세기일수도...
* 두사람다 음악가, 아무로는 피아니스트 샤아는 피아니스트->바이올리니스트
* 캐붕o
순간의 사고였다.
덮치는 그림자에 놀랄 틈도 없이 고통만이 신경을 자극했다. 당혹스럽고 무서운 마음보다도 인식할 수 없는 상황과 손에서 전해지는 고통만이 느낄 수 있는 전부였다. 왜 자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인지, 왜 미술학부의 전시 구조물이 자신을 덮치고 있는 것인지 그 어떠한 상황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하얗게 보이는 세상을 눈에 담아보려 수 없이 눈을 깜박였다.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려 곁에서 걷던 이를 찾아냈을 때 아무로는 숨을 삼켰다. 부드럽게 웃으며 안부를 묻던 샤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져있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부르는 샤아를 보고서야 엄청난 사고를 당했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사고. 명백한 사고다. 고통만이 번지는 몸이 제 이름을 인식하자 가늘게 떨렸다.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이 갑작스레 온몸을 덮친 것 같았다.
다급한 얼굴로 학부의 구조물을 치우는 샤아의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엔 고통이 담겨있었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보다도 고통스러워 보이는 샤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뗀 아무로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고통이 사라진 걸까, 좀 전까지의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구조물의 무거움 뿐이었다.
다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신경이 다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어째서 손은…….
차가운 바닥에 이마가 닿았다.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 까끌한 바닥에 닿은 이마와 코가 아프다. 움직인다는 감각이 없는 손끝에 몸이 떨렸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로,"
부르는 목소리에 고갤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시야에 유려한 얼굴이 가득 잡혔다.
"나, 나는... 샤아, ㄴ.."
눈꺼풀을 깜박여도 샤아의 얼굴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묻고 싶었다. 제 감각을 믿을 수 없는 지금의 상태를 다른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듣고 싶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몸을 떠는 아무로의 앞에 무릎을 꿇은 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선명하게 들린 사과의 말, 어째서 샤아가 사과하는 걸까.
샤아의 목소리 외엔 들리지 않았던 귀가 주위의 웅성거림과 엠뷸런스의 요란한 소리들을 담기 시작했다.
*
촉망받는 천재. 제2의 지온 즘 다이쿤. 후계자. 자신을 칭송하던 모든 말들은 사고와 함께 비운이라는 이름으로 점칠 되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마치 비운의 천재라고 불리기 위해 쌓아온 것이냥 그렇게 점칠 되었다.
당장 일주일 남았던 연주회도, 그 이후에 잡혀 있던 일정을 소화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앞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푹신한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아무로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활과 현이 닿아 바이올린이라고 하기엔 묵직한 음을 내는 이를 보며 무릎을 모았다.
전혀 닮지 않은 샤아의 부친에게 거둬진 것이 10년 전, 어린 자신의 손을 잡고 마치 구애를 하듯 피아노를 사사하고 싶다고 했던 남자는 자신의 사고 이후 병원에서 마주했던 것이 전부였다.
실망한 듯, 자신의 망가져 버린 손을 보곤 모든 일정을 취소하겠다는 말만을 전할 뿐이었다.
재활한다고 해서 예전만큼 칠 수 있는 손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불행한 사고였고 부주의했던 자신의 잘못이었다. 제 잘못이다.
아무로는 떨리는 양손을 맞잡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올린 소리가 사라졌다.
박수를 쳐야 하는데, 생각만이 머리를 스칠 뿐 떨리는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단히 맞잡은 손 위로 다정한 손이 덮였다.
"내 연주가 별로였던 건가?"
그럴 리 없다. 단 한 번도 그의 연주가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던가. 아무로는 무릎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푸른 눈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의 연주는 언제나 훌륭해. 내가 별로일 뿐이야."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미간에 아무로는 다시금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샤아의 저런 얼굴을 보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다.
아무로의 손을 덮고 있던 손을 떼곤 무릎에 묻은 얼굴을 감쌌다. 온기를 머금은 양손이 아무로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샤아는 우울함을 가득 담은 앳된 얼굴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사곤 네 잘못이 아니야."
"나도 알아."
힘 있는 말에 돌아온 자신 없는 답.
물기를 머금기 시작한 짙은 눈에 입을 맞춘 샤아는 아무로의 떨리는 몸을 품에 끌어안았다.
지온 즘 다이쿤의 병문안을 빙자한 파문 이후 아무로의 감정은 더욱 바닥을 쳤다.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망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아이에게 자신의 아버진 사형을 선고했다.
어깨에 스미는 눈물에 푹신한 적갈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위태롭고 안타까운 천재. 비극을 떠안고 괴로워하는 어린 천재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다른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쉬이 사라질 것 같은 아무로의 가는 몸을 샤아는 힘주어 감쌌다.
고작 피아노를 잃은 정도로 자신은 이 어린 천재를 놔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