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에스크 http://ask.fm/kyoa_573 @kyoa_573
교아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DRRR/시즈이자]구검복밀

2015. 7. 19. 03:14 | Posted by 교아
-2010/05/06 00:42
 
 
 
*구밀복검::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거리를 바라보며 남자는 웃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거리, 끊이지 않는 사람들, 넘쳐나는 사건과 사고. 언제나 흘러넘치는 이 모든 것들이 시부야에도 존재했지만 남자는 이곳- 이케부쿠로를 더 좋아했다. 모든 인물들이 모여 있으며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이곳은 남자의 쾌락주의를 충족시키기에는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은 하늘에 존재하는 하나뿐인 빛마저 잠식하고 있었지만 지상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빛으로 인해 그러한 것을 눈치 챌 겨를도 없었다. 아니 그러한 것을 눈치 챌 정도로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심한 듯, 미묘하게 일그러진 웃음을 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남자-오리하라 이자야는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몸을 때어내었다. 지상의 뜨거운 공기가 차게 식어 그 냉막한 손길로 영원이라 생각될 것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 이자야의 검은 머리칼을 휘감았다.

 

"오늘은 뭘 던질 거야, 시즈쨩?"

 

싸늘한 바람이 이자야의 검은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며 스쳐지나간다. 영원이라는 시간과 같이 그의 곁에서 맴돌 것만 같던 한기가 사라졌다. 거리의 화려한 빛에 의해 인식되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기쁜 것만 같은 웃음을 덧그리고 있었다. 그런 이자야의 표정에 시즈쨩이라 불린 남자는 얼굴을 사납게 구겨버렸지만 평소와 같이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어째서?

담배를 입에 문 남자는 자꾸만 구겨지는 미간을 애써 피며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악마 같은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는 악마의 것을 닮아 있었다. 아니 악마가 지옥의 끄트머리에서 올라온 듯 한, 그 아름다운 형상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시킨다는 그것이 저 생명체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그는 은연중에 모든 사건과 사고의 시작과 끝에 서있었다. 다른 누구도 모르게. 그렇게 시작한 모든 것들은 마치 악마의 저주에라도 걸린 듯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될 어린 양들을 찾아내어 잠식해 갔다.

후우-.

긴 한숨과도 같은 담배 연기가 남자의 입에서 뱉어지는 것을 빠짐없이 관찰하던 이자야는 다시금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은 미묘한 공기의 흐름, 남자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 그만이 다른 것은 아니겠지만. 평소 같지 않은 남자의 태도를 감상하며 이자야는 낮게 웃음을 그렸다.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는 나름대로 정보가 될 만하다고 여기며 가치를 매기고 있었다. 아니 정보의 가치만을 매기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케부쿠로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자아야아군?"

"시즈쨩은 매정하네."

 

어깨를 으쓱이며 남자의 말에 답할 마음이 없다는 듯 답을 회피하며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다. 마치 놀리 듯 얼굴 가득 즐겁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남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언뜻 보기엔 어릿광대와도 같았다.

 

"헤이와지마 시즈오다."

"알고 있어."

 

남자-헤이와지마 시즈오는 이자야의 대답을 들으며 담배를 꺾어버렸다. 신호와도 같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던 이자야는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폭력에서 최대한 빠르게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지만 시즈오는 평소와 다른 듯 했다. 기다리고 준비하던 폭력은 없었다. 오늘 보자마자도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언제나 다혈질적인 그 성격을 그대로 내보이던, 평소의 그답지 않은 차분함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즈오가 문득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이자야는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헤이와지마 시즈오를 살해하고 그 탈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다른 이는 아닐까~ 따위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바람 빠지는 것 같은 힘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얇지만은 않은 옷을 건너 전해지는 금속의 차가움을 느끼며 이자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달은 어둠에 묻혀있었고 거리는 너무 밝아 눈이 부셨다. 이런 것이 옳은 것일까.

 

"시즈쨩은 내가 싫어?"

"끔찍할 정도로."

 

거침없이 떨어지는 시즈오의 답에 이자야는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느린 동작으로 돌려 그에게 맞추었다. 본의 아니게 마주하게 된 이자야의 얼굴에서 씁쓸함이 묻어난다고 느낀 시즈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관찰하듯 흥미본위로 바라보던 이 끔찍한 쾌락주의자가 그런 얼굴을 할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시즈오 스스로도 지겹도록 잘 아는 오리하라 이자야의 얼굴에 스치듯 지나간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것이었다. 언제나 즐거운 일을 찾으며 꿍꿍이를 속이는 그 답지 않은 표정이었기에 시즈오는 그답지 않은 표정을 무시했다.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 기묘한 미소를 머금기 시작하는 이자야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오늘의 이자야는 유독 알 수가 없었다.

 

"난 시즈쨩이 무척 좋아."

"헛소리."

 

시즈오의 답에 작은 웃음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장난을 치는 듯 한 작은 속삭임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 웃음소리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이자야는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때어내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시즈오에게 다가섰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시즈오의 눈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가 단숨에 대답해 버린 것에 비해 꽤나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관찰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글쎄. 자신은 지금 진실로 즐거운 걸까. 문득 어떤 것이 자신의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됐다며 이자야는 억척스레 입 꼬리를 더욱 말아 올렸다. 진실이든 아니든 어차피 그런 건 이 남자-헤이와지마 시즈오와는 관계가 없어야했다.

 

"시즈오군이 좋아.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을 만큼."

 

시즈오의 곁에 다가서 속삭이듯 중얼거린 이자야의 표정은 여전히 생경한 것이었다. 남자치고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웃고 있지만 어딘지 가면을 씌워놓은 듯 한 곱상한 얼굴이 지나치리만치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표정에 한해서는 평소의 가면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자야의 알 수 없는 그 묘한 표정에 휘말린 걸까, 당황해버린 걸까? 눈가를 찡그리며 굳어버린 시즈오의 얼굴을 감상하듯 올려다보던 이자야는 창백한 얼굴에 덧그리듯 아주 짧은 시간 미소를 지웠다 다시 그렸다.

자아, 넌 이런 소리를 듣고서 어떤 답을 줄까? 붉은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을 주시하는 시즈오의 시선을 약간 피했다 다시 마주쳤다. 이자야답지 않게 조금은 부끄러운 듯도 하고 단순히 초점이 맞지 않았던 듯도 한 그 모습에 시즈오는 여태껏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시즈오의 머리는 오늘 그 자신의 이상 행동보다도 이자야의 이상한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대답은 고사하고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있는 시즈오를 보고 이자야는 작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에게 답을 듣기는 어려울 듯 했다. 약간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쉽다가 아니라 아깝다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여전히 미동조차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시즈오의 턱 끝에 입술을 부딪쳤다. 바람을 맞아 약간은 까슬하게 튼 입술로 스치듯 입을 맞추고는 짙은 웃음을 그렸다. 이미 패닉상태에 빠져서 들릴지 안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자야는 당황한 시즈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 아직 일이 많거든."

 

스치듯 시즈오의 곁을 지나치며 이자야는 낮은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자야는 시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철제 난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묘하게 비틀린 웃음을 그려 보인다. 달도 거리의 빛도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기며 이자야는 오늘은 이상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도, 자신도.

 

*

 

이자야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무척이나 반가운 듯 그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환한 미소에 나미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런 반응도 할 줄 아는군.'이라는 다소 냉정한 감상평을 내렸다.

 

"나미에~ 차 준비."

"네네."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는 이자야가 생소하면서도 달갑진 않았지만 나미에는 약간 굳은 얼굴로 차를 준비하러 들어갔다. 그래도 일단 그녀는 유능한 비서였다. 그녀가 차를 준비하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자야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에게 짙은 미소를 그려보였다. 뒤틀려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질 정도로 반가운 손님이었다.

 

"이야~ 의외인걸. 도타칭이 날 다 찾아오고 말이야! 난 도타칭이 하도 연락이 없어서 날 잊은 줄 알았단 말이지~. 이 무적의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씨도 가끔은 엄마가 보고 싶다는 걸 알아줘."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건 그만두라니까. 그리고 누가 엄마라는 거냐."

 

툴툴거리며 넉살 좋게 헤실 거리는 이자야를 흘기는 카도타의 표정은 말하는 내용에 비해서는 한없이 풀어져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같이 지냈던 탓인지 거의 모든 이들이 피한다는 이케부쿠로와 신주쿠에 악명을 널리 떨치고 있는 이 악질 정보상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의 방문-신라의 말을 빌리자면 딸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은 '인간러브★'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을 하고 다니는 이자야에게서 진짜 애정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하나의 아주 작고도 큰 사건이었다. 물론 그 사건이란 것이 평소에는 매우 드물었지만.

즐거운지 연신 얼굴에 웃음을 걸치고 앉아있는 이자야의 얼굴을 보고 카도타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몇 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도 학생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그의 모습-실제로는 그때보다는 성격이 더 악랄해졌지만-이 변함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진짜로 철딱서니 없는 딸은 둔 어머니의 걱정 같은 그런 미묘한 심정이었다. 쓸데없이 곱상한 얼굴이라던 지 항시 얼굴에 달고 다니는 웃음이라던 지 그런 것들이 너무 넘쳐흐르다 못해 뿌리고 다녀서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입에 담긴 것은 칼도 아니고 총도 아닌 희대의 살상무기였으니 그것이 아니었다면 카도타의 위는 이자야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구멍이 뚫리다 못해 이미 마모되어 없어졌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도타만의 생각일 뿐 다른 이들에게 이자야의 곱상한 얼굴도 항시 얼굴에 달고 다니는 웃음도 중요치 않았다. 단지 그의 입만 열리면 터져 나오는 그 살인적인 문구들로 인해 사람들은 그의 장점 따위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 도타칭이 아무리 내 엄마라지만 이유 없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아, 부탁받은 게 있어서 말이야. 사실 나도 별로 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부탁?"

 

정말로 싫은 듯 미간을 찡그리며 시선을 피하는 카도타가 의아해 이자야는 자신의 붉은 눈을 빛내던 것도 중지하고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가 저리도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부탁을 한 인물이 누군지도 궁금해졌다. 물론 카도타가 곤란해 해도 이자야 본인이 곤란해 할지는 의문이지만.

부탁받은 것이라는 게 자켓 속주머니에 있는 것이지 자켓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손은 어서 빼내 보라고 눈짓하자 마지못해 손을 빼낸다. 정말 죽기보다 싫은 듯 오만 인상을 쓰고 있는 그의 표정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듯 한 표정이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카도타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이자야는 그가 내미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선물용 상자가 무엇이 그리 불쾌하다고 저리 인상을 쓰는 것일까 하며 상자를 관찰해 봤지만 너무도 평이한 디자인에 평범함을 물씬 풍기는지라 이자야는 이해불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툭-.

분명 이자야의 손에서 상자의 뚜껑이 열렸지만 그의 손에는 뚜껑만이 들려있었다. 대체 내용물이 들어있는 상자는 어디로 갔는지 상자가 사라지는 순간 눈으로 쫓는 것을 놓친 카도타는 눈을 크게 떴다가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능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용물을 보고서 떨어트린 것인지 정말 눈 깜짝할 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표현해준 이자야의 행동력에 경의를 표하던 것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충격에 빠진 듯 평소 그의 자신만만하며 재수 없는 웃는 낯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는 뺨을 씰룩이며 분노를 참는 듯 했다. 아니 참지 않고 북돋고 있었다. 장담하건데 이건 이자야에게 있어서 신종이지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시이즈으쨔앙~."

"이, 이자야?"

 

불쾌한 듯 낮게 울려 퍼지는 이자야의 음산한 목소리에 카도타는 당황한 듯 그를 불렀다. 그러나 상자 속의 내용물이 그리도 충격적이었는지 이자야는 미간을 마구 구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자야답지 않은 감정적인 행동이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그와 같이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카도타는 나가는 문을 향해 맹렬히 걷고 있는 이자야의 뒤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이케부쿠로를 향하는 듯싶었다.

 

"나간건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여성의 고음에 카도타는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인지 나미에는 쟁반에 찻잔을 올려놓고는 이자야가 나간 문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자야가 봤다면 퇴근시간을 계산하고 있냐며 장난을 걸었을 테지만 그는 이미 나가버린 후였다. 그것도 검은 오오 라를 마구마구 풍기면서. 애써 내온 차가 아쉬운 듯 나미에는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손님 앞에 차를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휙-하고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의 비서지만 손님을 버리고 나가버린 그 상사가 더 무책임하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 무책임한 상사의 친구이자 어머니(?)인 카도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엉망으로 갈겨쓴 종이와 붉은 것들을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오늘도 이케부쿠로는 조용할 수 없을 듯싶었다.

 

*

 

러시아 초밥집 앞에 다다라서야 이자야는 빠르게 옮기던 걸음을 멈추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신주쿠에서 이곳까지 왔는지 기억이 드문드문한 것을 보면 답지 않게 이성이 날아간 듯싶었다. 천하의 오리하라 이자야답지 않은 짓을 했다며 이자야는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고는 초밥집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벌써 저녁이었다. 안에서부터 북적거릴 손님들과 조금은 허기진 배가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기는 했지만 썩 들어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아니 들어가면 왠지 바로 시즈오를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들어가기 꺼려졌다. 이성이 날아갈 만큼 급하게 이케부쿠로까지 온 주제에 막상 그를 만나려고 하니 두려움이 일었다. 실제로 그를 만나는데 두렵지 않다면 조금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시즈오가 가게 안에 있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혹시나 라던가 설마라던가 하는 일이 없지는 않으니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조심해야 하는 건가 싶기는 한데 맞으면 아프니까 조심해야했다. 일단 이자야는 아픈 건 정말 싫었다.

붉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거리를 살펴보던 이자야는 입 꼬리를 비죽 올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찬 밤바람에 서늘한 주머니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던 이자야는 배가 고프다며 자기주장을 하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점심때부터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였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때워야겠다며 이자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찾기 위함이었다.

 

"젠장, 운도 없지."

 

평소 바른 말(?)을 사용하는 그 답지 않게 거친 단어를 선정해 내뱉었다. 짜증난다는 듯 미간을 아무렇게나 구긴 이자야는 이게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안 만나기 위해 러시아 초밥집에 들어가는 것도 포기했는데 너무도 빠른 재회였다. 무의식중에 그의 눈치를 보기 위해 눈을 돌렸다가 시선이 마주쳐버렸다.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이자야를 알아본 듯싶었다.

평소처럼 그와 마주치자마자 내빼기위해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멍청하게도 원래의 목적-시즈오를 찾아내겠다는-을 망각했다는 사실과 어째서 자신이 시즈오 따위를 보고 도망쳐야 한다며 몸이 멋대로 반응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어져서 짜증이 치밀었다. 아무래도 이케부쿠로에 올 때마다 그와는 되도록 이면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던 것이 몸에 습관처럼 밴 듯 했다. 좋지 않았다. 이자야로선 머릿속이 근육으로 똘똘 뭉친 남자의 폭력이 꺼려지는 것이지 남자가 꺼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이 그를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자야는 구겨지려는 미간을 피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말 어서 빨리 죽어줬으면 좋겠다.

 

"카도타를 만난건가."

"헤에, 웬일일까나. 시즈쨩이 이렇게 다정하게 말도 걸어주고?"

 

시즈오의 말은 온전히 무시하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기쁘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꼬는 것일까, 아니 비꼬는 것이 명백한 표정의 이자야를 내려다보며 시즈오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꺾어버렸다.

 

"시즈쨩은 무슨 생각일까나, 신종 이지메? 아니면 누가 시켰어? 아 그럴 리는 없겠지 그렇게 했다면 그 녀석을 죽여 버렸을 테니까. 설마 하지만 날 진짜로 좋아한다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고, 소름끼쳐."

 

정말로 소름 끼친다는 듯 양 손으로 어깨를 감싸 안는 이자야의 행동을 주시하던 시즈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당장에라도 시부야로 꺼지라든가, 죽어 따위의 말을 할 것 같은 표정인 주제에 저번에 만났을 때처럼 기이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그 어떠한 폭력도 가하지 않는 헤이와지마 시즈오. 그런 시즈오는 정말로 소름끼친다는 생각을 하며 이자야는 한걸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발 모든 게 그저 그의 장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의 만남에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내뱉었던 간에 이런 것은 싫었다. 끔찍했다.

 

"도타칭에게 보낸 그거,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진심이라면 지금 당장 철회해줬으면 좋겠어, 시즈쨩. 내가 시즈쨩과 그래야 한다는 거 정말 싫거든. 소름 돋을 정도로 싫어. 시즈쨩 정말 싫단 말이야."

 

소름끼친다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일까, 거의 울 듯 한 얼굴로 말을 꺼내는 이자야의 표정에 시즈오는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거부의 말을 내뱉는 주제에 절박한 듯 평소의 그 답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몇 일전에 봤을 때도 이상한 말이나 생경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그였다. 그때는 어느 정도 말과 표정의 상호일치가 되어있었기에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이쪽은 상호불일치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난관인 것이다. 표정과 말이 따로 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은 이자야의 모습에 시즈오는 벌렸던 입술을 다물었다. 어떤 것이 진심일까.

 

"시즈쨩 어서 뭐라고 좀 해봐. 당장 아니라고, 평소처럼 당장 꺼지라고 죽어버리라고 말하란 말이야. 나 싫다고 했잖아!"

 

절박한 듯 시즈오의 옷자락을 떨리는 손으로 그러쥔 이자야가 속삭이듯 소리치고 있었다. 불안, 기대, 절망, 환희. 무엇이 천하의 오리하라 이자야에게 저런 표정을 선사하는 것일까. 자신조자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며 미간을 찡그리는 이자야의 모습에 시즈오는 가늘게 떨리는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생각보다 작은 손은 사시나무 떨듯 덜리고 있었다.

 

"벼룩주제에 요구하는 게 많잖아."

"벼룩이고 뭐고 도타칭을 통해서 보낸 거 당장 장난이라고 말하란 말이야!!"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눈을 치켜뜨고 소리치는 이자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시즈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고 싫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이가 말했다. 좋아하는 것의 반대는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싫어하는 것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의 반대가 싫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시즈오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이자야의 한쪽 어깨를 감싸 쥐며 어서 빨리 답하라며 재촉하는 그의 시선에 조금은 잔인할 정도로 선뜻 답을 내놓았다.

 

"진심이다."

 

신랄할 정도로 확고한 답에 이자야는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시즈오의 옷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바로 몇 일전에 만났을 때는 싫다고 말한 주제에 오늘은 진심이란다. 어쩜 이리도 잔혹할 정도로 말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 대체 그의 진심이 무엇이기에, 시즈오주제에 자신을 이다지도 잔혹스레 희롱하는 것일까. 그때 자신이 어떤 기분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는데 이렇게 돌려준단 말인가. 정말로 신종 이지메일까. 뒤죽박죽이다 못해 엉망진창이 되어 진탕을 뒹구르는 머리를 정리할 수가 없어서 이자야는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두었던 사고를 정지했다.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가 다였다.

 

"이자야."

 

무엇일까. 귀를 간질이는 음성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누가 이렇게 자신을 부른단 말인가. 그가 기억하는 선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이자야는 정지한 사고를 돌려놓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움직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붉은 눈동자가 선글라스 너머에 존재할 시즈오의 눈을 응시했다. 짙은 색의 렌즈가 가려진 시즈오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의 반듯한 코와 굳게 다문 입술만이 이자야의 시야에 들었다.

왠지 모든 것이 덧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 이자야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 꼬리만을 말아 올렸다. 그의 수려한 얼굴과 같이 지독하게 붉은 빛이었다. 지난밤, 오늘 지금 이 시간, 그에게 말했던 자신의 말. 그자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 어쩐지 모든 게 우스워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기묘하고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한데도 어쩐지 모든 것이 알 수 없어져버렸다. 이자야는 자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시즈오를 지우기 위해 눈을 감았다. 지독한 악몽과 다를 것이 없었다. 끔찍하고도 달콤한 것은 독이었다.